외국에 살면서 제가 가장 무서워 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사회입니다. 분명 동포애를 바탕으로 서로를 돕는 문화도 있지만 좁은 한인 사회 내에서 서로를 헐뜯고 괴롭히는 문화도 존재하고 더 중요한 건 악의는 없지만 한국인의 보수적이고 여자들의 낮은 자존감 문화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 외국에 있는 한인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인/한국인 가족들과의 저녁 모임에 갔습니다.  가족들이 모인 화기애애한 자리였고 다들 반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리가 매우 불편해 졌습니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모여 사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시고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모여 살림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전 살림도 못하고 자녀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남자분들과의 대화 자리에 앉아 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당연히 여자들과 자리를 해야 한다는 묵언의 압박을 받았고 예의상 여자분들 자리로 옮겨 갔습니다. 

제 나이를 가늠하고 결혼 기간을 바탕으로 저를 어떻게든 정해진 "한국여자"란 박스 안에 집어 넣으시려 하는 여자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분들 머릿속에 있는 "한국여자"의 모습과 역할은 참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제 남편이 저를 위해 미국까지 왔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모두 합창하듯 "남편이 참 착하다!"란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희 남편 정말 착한거 제가 더 잘 압니다) 자신들은 한국의 생활을 모두 접고 가족과 친구와 떨어져 미국이란 낯선 땅까지 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건 당연하다고 받아 들이되,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위해 커리어를 바꾸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는 모습이 저를 절망케 했습니다.  단 한 분도 제게 자신을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지 않으셨고 단순히 누구 누구의 엄마라고 말씀해 주실 뿐이었습니다. 

제 눈에는 이 분들의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남편의 능력, 아이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이였고 그런 의존적인 모습이 너무 씁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험한 세상에 도전할 필요도 없고 직장을 가질 필요도 없으며, 누군가는 가정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여자는 당연히 살림을 해야하고 아이를 돌보고 가족의 뒷바라지를 해야한다고 여기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까지 잃는 identity loss는 저를 정말 속상하게 합니다. 

다시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앉아야 하는, 여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누구의 엄마로 불려지는, 아내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남편이 도와주는 모습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자리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Posted by Jekkie

2011/08/03 07:02 2011/08/0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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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딸맘 2011/08/03 10:15 # M/D Reply Permalink

    네, 마흔 정도되는 나이가 되어도, 나와 비슷하면 내편,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남의편, 즉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더라구요.. 사람은 단 한사람도 같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서로 비교하서 나보다 잘났다는 생각이 들거나,
    나보다 잘하는게 있으면 뒤에서 헐뜯고 면전에서 괴롭히기도 하고...
    이 모든것들이 자존감과 연관이 있죠..

    1. Jekkie 2011/08/03 11:58 # M/D Permalink

      There is a special place in hell for women who don't help other women. - 매들린 얼브라이트 전 국방장관

  2. 비밀방문자 2011/08/03 14:11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Jekkie 2011/08/04 00:56 # M/D Permalink

      그 딴 미덕 이젠 갖다 버릴 때가 됐을 뿐이고.
      여자가 같은 여자에게 가면을 강요하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고.
      Again, there is a special place in hell for women who don't help other women.

  3. 동희 2011/08/06 20:12 # M/D Reply Permalink

    정은아...정은이 맞지?
    나 동희야.
    전사협 제주대 대표와 너의 서울대 인턴동기 ㅋㅋㅋㅋ
    이러면 기억 나나?
    이번달에 클리브랜드로 연수가기로 해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왔다 너무 반갑다 . 자료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자주 들릴께.혹시 미국가서 보스톤가게 되면 너보러 가야겠다 . 잘지내는것 같아 너무 좋구나. 담에 또 들릴께
    혹시 몰라서 이메일남긴다
    Alice211079@hotmail.com

    1. Jekkie 2011/08/07 06:03 # M/D Permalink

      동희야, 오랜만!
      당연히 기억하지! :)
      반가워.
      클리블랜드 살면서 정보 모아놓은 것 여기저기 있을 거야.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다.
      동부 놀러오면 꼭 연락해. 밥 먹자! ㅎㅎ
      이메일 보낼께!

  4. 한 스물 다섯 청년 2011/09/15 04:42 # M/D Reply Permalink

    어쩌다 이 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이 분들의 자존감은 자신의 능력이 아닌 남편의 능력, 아이의 성적에서 나오는 것이였고 그런 의존적인 모습이 너무 씁쓸했습니다....한국여자는 당연히 살림을 해야하고 아이를 돌보고 가족의 뒷바라지를 해야한다고 여기고..."

    제 어머니께 점잖이 말씀드리고 싶지만.. 가끔은 저런 "여자의 역할"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시는 어머니에게 너무 화가 나 원치 않는 말을 섞어 소리치게 되는.. 제 가슴속의 생각을 제 대신 너무나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 Jekkie 2011/09/16 07:35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어떤 말씀인지 이해가 돼요. 할머니와 엄마의 세대가 달랐고 엄마와 제 세대가 다르니 저와 제 다음 세대 또한 다르겠지요. We hope! :)

    2. Jekkie 2011/09/16 10:58 # M/D Permalink

      사실... 이 문제는 여자의 자존감 이상의 사회적 문제이기도 해요. 한 가정을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가장들과 부모의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자녀들, "여자의 역할"이란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 갇혀버린 여성들. 한국이 다음 경제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선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이 아닌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5. 비밀방문자 2011/12/29 01:37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Jekkie 2011/12/29 11:01 # M/D Permalink

      매우 개인적인 의견들입니다.

      1. 2003년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서 2006년 결혼을 했는데요, 저는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이 목표인 적은 없었습니다. 6년 전 결혼할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은 인생은 journey이고 삶의 동반자는 말 그대로 "인생을 함께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인생의 목표가 "돈 걱정 없이 편히 사는 것"이라면, 또는 어른들께서 경제적인 문제들로 삶이 힘드신 경험이 있었다면 좋은 집에 시집을 가라는 충고를 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제가 돈을 벌고 생활하면서 느낀 건 돈이란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에요. 어른들 말씀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지만 어른들께서 겪으신 삶과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많이 다르니까 I think you need to take everything in with a grain of salt. 정말 힘들 때는... 저도 그냥 욕심 다 버리고 살아볼까라는 생각도 해요.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절대 나쁘다고는 생각 안하고요. 그냥 저한테 안 맞을 뿐이죠. 마지막으로 남편도, 저희 시댁 어른들도 너무나도 저를 격려 해 주시고 제 개인적 성공을 기원해 주세요. 시집을 간다고 해서 사회적인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바를 못 이루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는 남편과 결혼한 것이 제가 태어나서 받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2. 한국이 싫어서 미국 또는 다른 국가로 가는 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도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많고 특히 외국인으로써 겪어야 하는 문제들 또한 있는데 한 문제를 피해서 더 큰 문제를 껴안을 수 있으니까요. 제가 미국으로 온 이유는 제가 원하는 커리어가 여기에 있었고 그래서 부딪혀야 하는 문제들이 있어도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가 확실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고 그에 따라 모든 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What do you want from life? Where do you want to go in life? What are your goals?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분명 있으시니 고민하시는 거잖아요. You just need to listen to yourself. You have all the answers.

    2. Jekkie 2011/12/29 13:48 # M/D Permalink

      I actually would like to tell you something in private. 이메일 주소 말씀해 주시겠어요?

  6. 비밀방문자 2011/12/30 01:42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Jekkie 2011/12/30 09:55 # M/D Permalink

      :) I'm sending you an email now.

  7. shana 2012/02/29 23:36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나이 26살 직장인입니다.
    jekkie님의 의견에 격한 공감을 표합니다.
    심지어 제 또래의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의 고정관념과도 늘 싸워야 하죠.
    편안한 직장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 시집갈 생각없이 공부하고 꿈을 함께 이룰 동반자를 찾겠다는 저는 늘 튀고 이상한 친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하
    llm defer한 상태이고 lsat준비시작했으며, a multinational pharmaceutical company의 말단사원이고, 학생시절 의국 비서 아르바이트로 쭈우욱 용돈벌이했던 저와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jekkie님의 책이 기다려지네요^^

    1. Jekkie 2012/03/01 05:23 # M/D Permalink

      안녕하세요? Thanks for sharing. 제가 이쪽으로 발길을 돌렸을 때가 25-26살 때여서 그런지 I think I kind of understand what you are going through. 특히 work background도 health care이셔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And always remember, you're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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