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보이는 나이에 대한 것만 신경 쓰다보니 털을 세운다는 것이 어떤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회의를 하는데 최근 몇 달 함께 일을 많이 해 왔던 보스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 그렇게 학교 다닌 것 치곤 참 정상이야. 놀랐어. 사회성도 있고."
단 한 번도 가방줄이 길어서 발생할 수 있는 선입견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원래 이 사람은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저를 싫어했습니다. 2년 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눈도 안 마주치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것이 시간이 지나자 저를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펠로쉽을 위해 직원으로 돌아온 후에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내자 다들 웃으며 말했습니다. 원래 변호사와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둘 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아랫사람으로써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지만 회의 중에도 제 의견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 안되겠구나"란 생각으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편하긴 했지만 제가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불편한 와중에 사무실 안에서 동선을 잘 짜가며 피하며 살고 있었는데 지난 4월 직속상관 변호사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반강제적으로 이 사람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서로 불편한 관계임을 알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쨌던 같은 배를 타기는 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어쩌면 이 상사는 제가 가장 솔직하게 회사에 대한 불만과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됐습니다. 변호사라고, 여자라고 무시 당하는 것이 싫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맡았던 일은 트집 하나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해 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괴로운 기간도 있었지만, 절대 그 상사가 저에게 강요를 한 건 없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증명은 했고 그 과정에서 친구도 됐고 이제는 제가 "책상이 왜 이렇게 지저분 하냐? 물 마신 컵은 왜 안 닦았냐?," "너 이 일 지금 처리 안 하면 언제하냐," "내가 보낸 파일 저장 안하고 어쨌냐? 왜 귀찮게 또 보내라고 하냐?" 라고 장난으로 타박을 해도 다 받아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 번 주 금요일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제가 그 동안 맡았던 일들을 인수인계 해 주는데 그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이고 사회성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과연 2년 전에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선입견으로 저를 바라봤는지... 금요일날 밥을 사 준다고 하니 가서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Jekk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