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오늘 회사에서 처음으로 화를 냈습니다. 원래 울컥하는 성격이 있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제게 화를 내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고 로펌 분위기 자체가 점잖고 나이스 한 곳이어서 가능한 항상 웃고 친절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해 왔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법인카드였습니다. 약간 다른 얘기이지만 한국에 살 때는 법인카드!하면 비리의 온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쓰는 사람이 비윤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관리자들이 암묵적으로 용인해 주는 관행의 문제이지 법인카드 자체의 문제임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예를들어 출장을 가야하거나 지난 주처럼 컨퍼런스에 참여해야 할 경우 로펌에서 스폰서를 해 줄 때는 따로 비용청구를 하지 않고 법인카드를 사용하고 필요한 영수증만 제출하면 간단히 비용처리가 되는 편리함이 있습니다.

지난 4달 동안 일 목적으로 사용한 법인카드 비용이 꽤 됐습니다. 영수증들은 모두 제때 비서를 통해 제출했고 제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달 동안 단 한 번도 결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몇 달 전 문제를 파악한 비서는 비용을 담당하는 부서와 끊임 없이 실갱이를 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지껏 결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오전 매우 바쁘게 일을 하고 잠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차를 한 잔 우려내고 있는데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네!"

"비용 처리 부서 직원과 3자 통화에요."

"제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차가 맛있게 우려내 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법인카드 문제 때문에 그러는데요, 뭐가 잘못된 것 같아요."

('네 알고 있어요.')

"비용처리 웹사이트에 접속하셔서 이것 저것 저것 확인해 주세요."

순간 울컥 했습니다. 비용청구 부서가 따로 있는 건 제가 비용청구 걱정을 하지 않고 제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몇 달 동안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저에게 한 번도 접속해 보지 않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URL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무엇을 확인하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인카드이지만 제 신용이 걸려있는 문제이므로 법인카드 비용청구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 신용등급이 깎일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사과 없이 무작정 다짜고짜 문제가 있으니 저보고 해결하라는 것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죄송한데요, 제 job은 비용청구가 아니잖아요. 필요로 하시는 영수증은 이미 몇 달 전에 제출했고 시스템상에 제 비서가 입력까지 했어요. 제 비서가 몇 달 동안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와서 근무 시간에 저보고 비용청구 웹사이트에 들어가라니 무슨 말인가요? I'll do my job, you'll do your job. Is that clear?"

"Yes, very clear."

"Great."

그리곤 전화를 끊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예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끊자 제 오피스 메이트가 조용히 사무실 문을 닫아 줬습니다. (전화 할 때 닫아 주지...)  그나마 이 상황에서 유머를 찾자면, 오전 내내 건너편에서 인사담당자가 로스쿨 학장들에게 "우리 로펌은 똑똑하고 성적이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대인관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성 있는 지원자들을 선호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고 속으로는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를 되세기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울컥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Oh well.

1분도 지나지 않아 비서가 총총총 달려 오셨습니다. 들어 오시자 마자 오피스 메이트에게 하시는 말.

"Don't make her angry.  We need to keep her happy."

하루 종일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위의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아마 또 쓴소리를 할 것 같습니다. 이유는 귀찮거나 짜증이 나서가 아니라 일을 맡은 담당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힘들면 서로 도와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미루는 것은 매우 잘못 됐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만약 제 도움 없이 문제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었다면 버럭한 것에 대해 사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비용청구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된 걸 보면... They weren't really doing their job. 

착하게 살자 착하게 살자...

Posted by Jekkie

2012/02/01 12:37 2012/02/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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